‘나는 왜 쓰는가’로 시작하는 책의 서문은 이 책을 한순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은유 작가는 글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서전 혹은 독백의 형태로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다.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은유)작가의 삶을 들여보며 글쓰기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p.9

작가는 글쓰기는 정신과 마음을 정리해준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꼬여 있거나 떠다니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여 한편의 깔끔한 세계를 이룰 수 있다. 마치 하루의 끝에 쓰는 일기로 하루를 되돌아보며 객관적인 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글을 쓸 소재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적다는 뜻이며, 이는 자신의 외면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바쁘게 생활하며 나아간다고 믿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글로 써내는 시간과 노력이야말로 자신이 나아지는 방법일지 모른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p.56

다만, 3분의 2지점부터 시작되는 르포와 인터뷰, 부록으로 추가된 제자의 작품들은 본 책의 주제와 큰 관련성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초반 부의 나타난 작가가 된 동기와 글쓰기의 목적, 어려움들이 더욱 흥미로웠다.


p.20
글쓰기 전에는 단순한 ‘활자 읽기’라면 글쓰기 후에는 글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로 독해가 비약한다. 글쓴이의 처지가 헤아려지며 문제 의식과 깊게 공명할 수 있다.

p.
글쓰기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동작이다. 낫이 아니라 낫질이다. 혼자서 자문자답의 노동을 반복하다가 우리는 잠시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p.52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 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이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 지 모른다.

p.97
시집은 나의 변화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때는 도저히 감각의 주파수가 안 맞던 시가 계절이 바뀌고 나면 읽힐 때가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 책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사이 나는
살았고 뭐라도 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p.119
모든 글(책)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신체가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p.129
두툼한 책이든 한 페이지 글이든 한 줄로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글에 대한 예의다. 내가 지금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것이다. ‘관습적 해석에 저항하는 글을 재미있게 쓰자.’

p.167
흩어져 빛나는 별들 그대로, 그러나 나만이 알고 있는 금긋기를 통해서 별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그 어떤 조형. 명멸하는 먼 별들이 없으면 나의 금긋기도 없다. 나의 금긋기가 없으면 별들의
별자리도 없다.

p.171
뭔가 전율을 가져오는 ‘신의 한 수’ 같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은 갈망의 산물이 아니라 습작의 결과다.

p.271
존재를 닦달하는 자본의 흐름에 익사당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자기 돌봄의 방편이자, 사나운 미디어의 조명에서 소외된 내 삶 언저리를 돌아보고 자잘한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어 밝히는 윤리적 행위이자, 이야기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야기를 살려내고 기록하는 곡진한 예술 작업으로서의 글쓰기.


EBS 북카페 – 은유 - 글쓰기의 최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