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 김탁환, 이토록 서글픈 제목이 있을까..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어떤 책보다 가장 인상적인 책 제목이다. 저자의 서러운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하였을까. 책을 읽는 중에도, 덮어서도 내내 글귀가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문체나 옛 단어들이 낯설어 앞부분에서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등장인물들에 매력과 추리 소설의 묘미에 빠지면서 어느 순간 중반을 넘어서 끝을 향했다. 익숙지 않은 문체 또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저자는 소설 속에 소설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지키려 애쓰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지만, 정작 잊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시대에 쓰인 고전 소설이라는 것을 말한다. 소설 속에 나온 어느 인물보다 가장 서글프며, 애타는 사람은 저자이며, 누구보다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소설이란 원래 천천히 오랫동안 흘러드는 법이니까. 허나 한번 독자들 가슴에 닿으면 결코 지워지지 않지. 저도 모르게 소설의 분위기와 가르침에 젖어 든다네. p.280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소설이 가져야 하는 목적과 방향에 대해 소설 속 저자들이 끊임없이 논의하며, 고민을 밝히는 부분이다. 과연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소설이 현재 시대의 문제점을 즉시하고,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혹은 해도 되는가… 소설은 어찌 보면 가볍게 읽고 넘어갈 수 있지만, 독자의 내면을 건드리기 시작한다면 어느 무엇보다 강하게 마음을 흔들고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강력함이 있다.

나조차 고전 소설이라는 장르는 학교를 졸업한 후 읽은 적이 거의 없다. 해외 유명 문학 작품들은 꾸준히 읽는 노력을 하면서, 정작 우리 고유 글자로 쓰인 문학을 전혀 접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책 제목의 서글픔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 같다.

고전 소설의 문체와 소설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 한 편의 멋진 소설을 접했다.


P.42

맑고, 단정하며 곧고 강한 글도 아름답긴 하지. 허나 소설은 자네 말대로 별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에 다가설 수 있는 거라네. 다양하고 부드러우며 멀리 둘러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산만하고 복잡하고 때론 한없이 지루하기까지 한 글쓰기이기에 세상의 온갖 고민을 건드릴 수 있는 법이야.

p.102

소설이 흥미진진하고 복잡할수록 매설가의 삶은 단순하고 재미없다. 소설에 담긴 풍광이 밝고 아름다울수록 매설가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어찌 알랴.

p.319

이름까지 모독으로 바꾼 것은 내가 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만들더라도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때문이었지요.